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상륙작전 (문단 편집) === 독일군 === B집단군의 사령관 겸 대서양 방벽의 책임자를 맡고 있었던 육군 [[원수(계급)|원수]] [[에르빈 롬멜]]은 [[북아프리카]] 전역에서의 경험을 살려, 1943년 말 서부전선에 부임하면서부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연합군 상륙부대를 저지할 방법을 모색했다. 그 결과 대규모의 [[지뢰]] 지대와 해안 장애물, [[벙커]], 육해군 [[해안포]][* 독일의 해안포는 육군과 해군이 양분해 운용했다. 노르망디 해안의 해안포는 육군 소관이었다.] 및 [[야포]] 진지 및 [[공수부대]]의 강하와 공수를 방해하는 장비들을 설치했다. 롬멜의 방침에 따라 프랑스 해안 등지에 설치하게 될 지뢰는 약 2천만 개 정도가 될 것이며, 프랑스 내 여러 방어선을 구축하며서 매설할 양은 계획상 총 2억 개에 달하였다.[* 독일 육군 B집단군 공병사령관 마이제 장군의 1944년 3월 17일자 편지에서 발췌.] 실제로 1944년 5월 20일까지 해안에 설치한 지뢰의 수는 4,193,167개에 달하였으며, 이 중 2,672,000개가 롬멜의 지휘하에 매설되었다. 이외에도 일부 지뢰는 공수부대를 우려해 후방에 매설했다. 또한 5월 13일까지 총 517,000개의 수중 장애물이 프랑스 해안에 설치되었으며 그 중 31,000개는 기뢰였다. 이외에도 롬멜은 수도 없이 많은 장애물을 해안에 깔아두었는데, 해안 장애물의 목적은 연합군의 상륙주정들을 파괴시키는 목적이며, 썰물시에는 상륙하는 적의 전차를 저지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. 이 방해물들 중에는 기뢰나 폭탄이 장착되어 강한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도록 설치된 장애물도 있었으며, 이들은 상륙 작전 당시 톡톡히 제 몫을 다했다. 그러나 실제로 장애물을 설치하기로 한 해변의 4개 구역 중 2개 구역만 상륙 개시일까지 완료되었고, 나머지 공사중이던 구간도 상륙 당일날 상륙부대보다 앞서 출발한 영국 해군 [[코만도(영국)|코만도]]들에 의해 폭파되었다. 이 외에도 공수부대를 막을 목적으로 롬멜은 공수부대의 [[글라이더]]가 착지할 만한 지점에 30m 간격으로 높이 3m의 말뚝을 세우려고 했다. 그러나 [[말뚝]]만으로는 글러이더에 타격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, 나중에는 [[전기파리채|말뚝과 말뚝에 전기가 통하는 선을 설치해 글라이더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게 했다]]. 또한 말뚝 위에 달아놓아 글라이더를 폭파시킬 폭탄 100만 개를 준비했지만, 정작 상륙 당일까지 말뚝 설치가 완료된 곳은 거의 드물었다. 당시 독일군 방어부대의 배치는 아래와 같다. * 유타 해변 - 육군 제709보병사단 * 오마하 해변 - 육군 제352보병사단,[* 단대호 100단위 부대치곤 [[동부전선]]에서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정예부대였다. 당시 연합군은 5일까지도 오마하에서 32km 떨어진 셍-로에 주둔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엄청난 사상자를 내게 된다.] 제726척탄병연대의 일부 * 골드 해변 - 육군 제716보병사단,[* 소련군과 폴란드군 포로 출신으로 구성. 영화 [[마이웨이]]로 유명한 [[동방부대]]로 이루어진 사단이라 전투력은 미미했고, 실제 상륙 당시 일부 부대원들이 자진해서 투항하고 정보를 줬다.] 제352보병사단 * 주노 해변 - 육군 제716보병사단 * 소드 해변 - 육군 제716 보병사단, 제711보병사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